1980년. 블랙 새버스(Black Sabbath)의 [Heaven and Hell]과 AC/DC의 [Back in Black]이 발표된 해였다.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는 [British Steel]로 헤비 메탈 사운드를 정립했고,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은 막 데뷔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시대를 개막하려 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헤비 메탈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 음악시장의 이런 조류가 한국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한국에서 헤비 메탈은 그 자체로 생소한 낱말이었고, 하드 록조차도 여전히 낯설었다. 1970년대에 영미의 음악과 어깨를 나란히 해오던 선배 록 밴드들은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다. 남아있는 록 밴드들은 각종 가요제를 통해 배출된 캠퍼스 밴드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경계에 서있었고, 음악 또한 세계의 조류와는 거리가 먼 토속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물론 이는 독창성이란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지만, 동시대성이란 측면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그마(Magma)의 등장은 기적과 같았다. 1980년, 제4회 대학가요제 무대. 청년문화의 풋풋함과 대학생들의 낭만으로 가득 찬 무대는 여느 해와 다를 게 없었다. 마그마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키보드가 빠진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록 트리오 구성으로 무대에 오른 마그마는 강력한 하드 록/사이키델릭 사운드로 청중을 압도했다. 기타 아르페지오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사운드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구성력은 '캠퍼스 밴드'라는 말을 붙이기 미안한 수준이었고, 역시 부드럽게 노래하다 후반부에 날카로운 샤우팅 창법을 들려주는 조하문의 보컬은 기존 한국의 음악에서는 어떤 연계점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들려준 사운드의 강렬함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했다. 비록 동시대의 헤비 메탈 사운드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의 쇳소리는 당시 가요제 무대뿐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 전체를 통틀어 유래가 없었다. 마그마는 어쩌면 대중에게 소음처럼 인식될 수도 있는 하드 록 넘버 '해야'를 가지고 대학가요제에 도전하는 담대함을 보여줬다. 이는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확신이었을 것이다. 박두진의 시를 개사한 인상적인 노랫말과 일출의 이미지를 그리는 드라마틱한 구성, 그리고 조하문의 샤우팅 보컬을 앞세운 세 멤버의 사이키델릭한 연주는 한국 하드 록 역사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마그마는 '해야'로 은상을 수상하고 바로 이듬해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너무 프로 같아서 대상을 주지 않았다는 미확인 뒷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마그마는 이미 준비된 밴드였고 자신들의 것을 갖고 있는 밴드였다. '해야'뿐 아니라 '잊혀진 사랑', '아름다운 곳' 등이 담겨있는 이들의 데뷔 앨범은 '해야'로 한껏 높아진 하드 록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잊혀진 사랑'과 '아름다운 곳'에서 들려주는 조하문의 놀라운 샤우팅과 연주곡 '탈출'을 비롯해 전체적인 사운드를 주도하는 김광현의 기타 연주는 동시대의 밴드들보다 몇 걸음은 앞에 서 있었다. 김수철이 이끄는 작은 거인과 무당, 그리고 마그마가 있음으로 해서 한국의 하드 록/헤비 메탈 역사는 부족하나마 동시대성을 획득하고 미약하게라도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마그마는 그렇게 '해야'와 '잊혀진 사랑', '아름다운 곳'을 통해 한국 헤비 메탈의 원형을 제시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 속에서 헤비 메탈이라는 무겁고 단단한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